왕따 초등학생은 누가 만드나?

얼마 전, 처형의 지인분 초등학생 딸이 학교에서 왕따(폭력은 아니고 무시 정도)를 당하고 있다는 마음 아픈 이야기를 들었다. 그 근본 원인은 담임 선생이 던진 비행기 못 타본 사람 손들어봐라는 무심하고 무책임한 질문에 정직하게 손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 그래도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에 집안 생계를 다 엄마 혼자 책임을 지고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엄마오빠여동생의 3인 가족이었는데, 담임선생이라는 사람의 무책임한 언행이 이 가족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는지 말로는 다 표현 못할 정도다.

몇 살 더 먹은 오빠는 바보같이 손은 왜 들었어라며 오히려 동생을 나무라고 있다며 엄마는 가슴이 먹먹하고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가까운 곳이라도 비행기를 한 번 태워야 할지 알아봤다고 까지 한다. 하지만 엄마가 일에 치어 너무 바빠서 아이들끼리 비행기를 태울 수도 없고, 속만 태웠던 모양이다. 그러다 조카가 매번 도쿄의 우리 집에서 방학을 보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신의 따님을 한 번만 같이 보낼 수 없는지 물어보셨다고 한다.

사정은 딱하고 마음 아픈 이야기지만, 예측 못했던 사고나 병이라도 걸리면 우리 부부가 책임질 수 없는, 남의 집 귀한 자식이기에 선뜻 그렇게 하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큰 마음 먹고 포용할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아직 우리 부부의 그릇이 그 만큼 크지는 못했던 것이다. 우리의 매몰찬 거절을 듣고 그 어머니는 얼마나 더 가슴이 아팠을지, 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에게 거절당해야 한 그 초등학생 소녀에게 참으로 미안하기 그지없다.


 출처: http://filipinobook.com/i-was-a-teacher/


초등학생 조카에게 아이들이 무시를 당하거나 왕따 당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30년이나 된 나의 초등학교 시절과 별 다르지 않다. 아주 작고 사소한 선생의 말 한마디, 표정, 무심한 행동과 방관, 그리고 무시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매우 많아 보인다. 적어도 초등학교에서는 담임선생의 영향력이 굉장히 크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는 아빠와 지내는 시간보다 담임선생과 지내는 시간이 훨씬 길지 않은가.

돌이켜 보면 초등학교 시절, 매 학년 시작과 동시에 제일 먼저 해야 했던 가정환경조사서라는 것이 있었다. 가족관계와 종교, 부모님의 직장, 직업, 학력에 형제의 학교, 수입은 얼마 정도나 되는지, 집에 피아노는 있는지, 전축(!)이 있는지, TV는 흑백인지 칼라인지까지 시시콜콜히 밝혀야만 했다.

우와, 너네 집 피아노도 있어?”

칼라TV?”

쟤네 자가용 있대!”

8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가 보면 이게 무슨 옛날 얘긴가 싶을 내용이지만, 지금 서울에서 제일 한 동네 중 한곳인 서래 마을에 아직 밭이 남아있었고, 서래 마을에 산다는 이유 만으로 선생에게 가난하다 개 무시 당하고 한 대 더 얻어 맞아야 했던, 8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니던 내 기억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선명하다.

요새 애들은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커다란 피아노도 부의 상징이 아니고 TV도 흑백/칼라가 기준이 아닌 30인치냐 60인치냐로 부의 기준이 바뀌고 해외여행이 대중화될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무심한 선생들은 변함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것 같다.

왕따 혹은 이지매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나를 포함한 어른들의 막연한 인식 속에서, 학생들끼리 또는 학생 개개인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강한 것 같다. 물론, 개개인의 성격이나 행동이 원인인 경우도 많겠지만, 적어도 어른들이나 선생이 그 원인을 제공하는 일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그것이 경제적인 이유, 빈부의 격차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더더욱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며칠 동안,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비행기를 타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상처 입어야만 했을 초등학생 소녀가 머리 한 구석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후기...

 오늘 아침, 새로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초등학생 소녀가 어제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고 하는 군요. 약물 치료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루 빨리 악몽같은 초등학교 생활을 졸업하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길 바랍니다. 마음 한 켠이 기브스를 한 것처럼 매우 불편하군요.

 

2012/02/07 - [Tokyo?Japan?] - 학교폭력(이지메)의 대처 순서

2012/02/02 - [Tokyo?Japan?] - 일본의 이지메(왕따) 대책

Posted by 빠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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