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02.01 폭력 선생에 관한 기억 24
  2. 2012.02.07 학교폭력(이지메)의 대처 순서 1
  3. 2012.02.02 일본의 이지메(왕따) 대책 8



폭력 선생에 관한 기억

최근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왕따이지메가 자주 뉴스가 되다 보니 저녁에 아내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참 하게 되었다. 요즈음의 왕따이지메만큼 과격하지는 않았지만 80년대에도 90년대에도 그것이 없지는 않았었다. 서로의 학창시절에 대해서 대화를 하다 보니 왕따가 아닌 또 다른 심각한 문제가 학교 생활, 학창시절에 계속 존재해 왔음을 떠올리게 되었다. 비슷한, 고만고만한 구성원들이 아닌 절대적인 존재, 선생님이 항상 그 곳에 있었다. 특히나 담임선생님.

수십 년이나 지난 지금, 그 어느 선생님들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나의 국민학교 4학년 담임선생을 제외하고는. 지나친 폭력과 비뚤어진 성격으로 차별과 폭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게 해 주었던 그 사람. 30년이 지나도록 그 이름 석자도 절대 잊지 못하게 만든 그 사람.

세상이란 것이 무엇인지 조차 아직 잘 모르던 10살 꼬마들에게 촌지폭력의 함수 관계를 알려준 그 사람. 같은 반 친구들 사이에 빈부의 격차가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을 억지로 인지시키고 깊은 감정의 골을 파준 바로 그 사람. 똑같이 숙제를 안 해와도 못 산다는 이유로 수십 대를 더 때리던 그 사람.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왕따를 지휘하던 그 사람. 부모님들께 뻔뻔하게 거짓말 하던 그 사람. 없는 살림을 짜낸 어머니가 촌지 봉투를 건네면 열흘 동안은 절대 때리지 않던 그 사람.

나는 자타가 공인하던 매우 얌전한아이였다. 겁도 많은 편이어서 심한 장난도 치지 못했고 키도 작아 첫째 줄 교탁 바로 밑에 턱 받히고 앉아 어떻게 하면 선생님께 칭찬 받을까를 주로 생각하던 그런 아이였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더 많이 맞은 편도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4학년이 시작됨과 동시에 나는 그나마 내가 가장 미움 받는 단골이 아니라는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느낄 정도로 변했고 다시는 그 어떤 선생님을 존경하거나 가까이하고 싶어하지 않게 되었다. 1984년은 내 인생 최악의 시기, 지옥 그 자체였다.

단골이었던 아이는 우리 반에서 가장 집이 가난하던 아이였다. 그 친구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십 대의 매를 맞았다. 그 사람이 단골아이를 빗자루로 때리며 외치던 말이 지금도 생각난다. ‘너도 너네 부모처럼 똥치고 농사나 지어라 병신새끼’.

 

수업시간은 6.25 전쟁 중 수류탄 까 던지고 다 쏴 죽이고 공산당 개새끼들, 하는 내용으로 바뀌기 일쑤였고 가끔 보다 못했는지 부잣집 아들 반장 녀석이 수업하자면 , 그래. 너무 샜구나하고 수업으로 돌아오곤 했다. 단지 딱 한번, 공부는 잘 했지만 못사는 집 녀석이 흉내 내서 수업하자고 그랬다가 너 같은 새끼가 빨갱이 공산당 새끼라고 남은 수업시간이 끝날 때까지 교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패고 패고 걷어 차고 때리고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팼다. 오장풍이던가. 갑자기 우리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던 패륜 선생. ‘선생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아무런 추가적 의미가 없는 직업에 지나지 않음을 우리 사회에 알려 준 그 오장풍 동영상을 봤을 때도 그 일을 떠올렸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10살짜리 아이들을 서슴지 않고 빨갱이 간나새끼로 몰아 붙였다. 아이들은 눈에 띄게 변해갔다. 눈치보고 아부하고 알아서 기고 알아서 바치고 서로 서로 일러바치고. 그 사람은 10살짜리 아이들을 사회에 찌든 몸집만 작은 어른들로 바꾸어 놓았다.

내게는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국민학교 4학년 때 담임의 이름을 Google에서 검색해 봤다. 인터넷은커녕 컴퓨터조차 생소하던 너무 오래 전 일이라서 그런지 검색 건수는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결과 하나가 내 눈을 끌었다. 어느 조악한 오래된 게시판에 누군가가 올린, 자신의 어린 시절에 관한 글이었다.

6.25 참전 국군장교, 상이군인, 상처에 대한 묘사도 인상착의도 이름도 같고. 그의 경력, 특징이 정확히 일치하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많이 맞았다는 내용. 그 사람이 분명했다. 놀랍게도 글을 쓰신 분은 4.19혁명이 일어난 이듬 해에 그 사람을 담임으로 맞이했다고 한다.

1961년에 국민학교 4학년. 나는 1984년에 국민학교 4학년 때 그 사람을 담임으로 두고 졸업할 때까지 학교 내에서 멀리 보이기만 해도 도망가거나 숨었으니 적어도 25년 이상 그 사람은 초등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상대로 촌지를 뜯어내고 이유조차 명확하지 않은 무자비한 폭력을 계속 휘두르고 있었다는 뜻이다. 절대 선생이 되어서는 안됐을 사람이. 한 반에 60명이 당연하던 시절이니 25년간 적어도 1,500명의 어린이들은 크건 작건 나처럼, 1961년에 그 사람을 경험한 이름 모를 그 분처럼, 마음에 새겨진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떠오른 그 이름 때문에, 30년이나 된 그 기억 때문에 어제 저녁부터 하루 지난 저녁인 지금까지, 불쾌한 감정이 하루 이상 지속되고 있다. 이렇게 풀어서 써 놓고 당분간 또 잊고 살고 싶다. 그 사람, 당시에도 나이가 많은 편이니 이미 죽어서 어딘가에 묻혀 있겠지만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덧붙임>
 

많은 분들이 읽어 주셔서 Daum View 베스트 1위가 되었군요. 

비슷한 경험, 비슷한 고통을 받은 기억을 가진 분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이 다시 바로 서길 바랍니다.

바로 선 교육으로 나라가 바로 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관련글: 

왕따 초등학생은 누가 만드나? http://ppayaji.tistory.com/260
일본의 이지메 (왕따) 대책 http://ppayaji.tistory.com/241
학교폭력 (이지메)의 대처 순서 http://ppayaji.tistory.com/242

Posted by 빠야지™
:


 

이 글 또한 이전 글 일본의 이지메(왕따) 대책과 같이, 일본의 어느 교육자/이지메(왕따) 전문가가 자신의 블로그에 쓴 내용을 원작자의 허락을 얻어 번역했다. 우선은 원본 내용부터.

 

 

학교폭력(이지메) 문제를 논의할 때의 순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 내에서 이지메(왕따)가 발생한 경우에는, “피해자의 보호”, “가해자의 처벌”, “피해자 및 가해자의 멘탈 케어”, “재발 방지등 많은 과제가 동시에 발생한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동시에 과제가 발생하지만 그 과제 해결에 대해서는 우선순위가 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학교 밖의 사회에서 범죄와 인권침해사건이 발생했다고 상기하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사항은 피해자의 보호인 것이다.

심각한 폭력이 발생한 경우, 양호실 등교를 인정하고, 추가로 가해자(상황에 따라서는 피해자)의 수업을 별도의 장소에서 하며, 피해자의 보호를 위해 가해자를 정학시켜야 하는지를 조속히 결단해야 한다.

가해자의 처벌이 그 다음이고(다시 한번 말하지만 분명한 것은 가해자의 정학은 피해자 보호를 위한 것이지 처벌이 아니다), “피해자 및 가해자의 멘탈 케어”, “재발 방지순서로 대책을 생각하는 것이 일반 사회의 사고 순서인 것이다.

그런데 범죄성 강한 인권침해사건임에도 학교에서 발생했다는 이유 만으로 학교 폭력또는 학생 폭력이라는 타이틀이 붙고 가해자도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다라든지,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 문제는 지금부터 어떻게 할 것 인가다라는 둥의 말을 하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고, 자기 자식 귀한 줄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부모의 난동 등으로 의논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보호자에게 있어서 자식은 어디까지나 예쁜 법이고, 담임선생과 교장은 가해자의 정학과 가해자의 처벌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피하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의논은 어디까지나 피해자 및 가해자의 멘탈 케어재발 방지로만 흘러가 버리는 일이 많다.

이와 같은 학교 특유의 의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혼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의논 순서와 정리 역할을 누군가가 해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그 역할을 해야 할까?

사실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아주 간단하게 순서만 제안하면 될 일이다.


 

 

동감되는 내용이 참 많다. 피해자의 보호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가 공감할 만한 일 인데도 불구하고 보호해야 할 교사가 가해자의 일원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고 또 가해가 시작되는 원인을 제공하는 일 또한 많다. 그리고 가해자가 확실하게 구분되지 않고 학급원 전체가 가해자인 사례도 적지 않다 보니 피해자의 보호가 결코 쉬운 일도 아니다. 게다가 가해자의 부모가 등장하여 가해자를 피해자로,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려고 기가 막힌 자식 사랑을 피력하는 일은 거의 당연 하다시피 반복된다. 하지만 2, 3차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학교와 교육 당국은 반드시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 지난 수많은 사례에서 보듯이, 가해자들은 부모의 보호와 학교 및 교육 당국의 방종으로 멀쩡히 잘 살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거나, 자살을 하거나, 정신적으로 이상이 생기거나, 트라우마로 인해 평생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일도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대처 순서의 두 번째, “가해자의 처벌의 경우,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일 좋을까. 위의 일본인 교육 전문가가 이야기 했던 것처럼, 장소가 학교이고 가해자가 학생일 뿐, 어디까지나 범죄이고 인권침해사건으로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법률에 의한 강력한 처벌이 존재하는 이유는 피해자에 대한 책임과 재발방지를 위해서다. 부모나 교사가 감당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일반 사회의 룰을 적용시키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아울러, 학생 신분의 가해자를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가해자가 미성년이나 학생이라 직접적인 처벌이 어렵거나 그 방법이 미약하다면 가해자의 부모에게 사회적인 책임을 지게 만드는 것 또한 강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가해자에게 그 부모와 함께 사회 봉사 200시간을 명령또는 퇴학을 학교 측에서 제시하여 선택하게 하거나, 소년법원이 같은 방법으로 판결을 내리는 것은 어떨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미성년자 양육 및 교육 책임이 마치 대부분 학교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성 교육은 부모의 책임이 더 크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피해자 및 가해자의 멘탈 케어”, 그리고 재발 방지”.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이렇게 간단하게 16글자, 4글자로 적을 수 있다는 것도 이상할 정도다. 이 심리 치료가 얼마나 중요한 지는 잘 알고 있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문외한인 내가 떠들만한 분야가 아니기에 법제처의 학교폭력 피해학생 보호 및 지원http://goo.gl/tFqhe 인터넷 주소 만을 올리겠다. 그나마, 관련 법이 제정되어있다는 것이 천만 다행이다.

 

끝으로 정리하자면,

1.     학교폭력은 범죄성이 강한 인권침해사건이다

2.     피해자의 보호가 최 우선이다. 가해자의 정학/퇴학은 처벌이 아니다.

3.     학교폭력에 대한 대응 순서 및 방법을 확립시켜 피해자를 지키고 나아가 학교폭력을 격감시켜야 한다.

4.     미성년자의 정신적인 성숙은 교사보다 부모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학교폭력 가해자의 부모는 자식과 함께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5.     피해자가해자모두 심리 치료를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6.     학교폭력은 방지되어야 하며 교육당국과 교원들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Posted by 빠야지™
:

 

 이 글을 일본의 어느 교육자/이지메(왕따) 전문가가 자신의 블로그에 쓴 내용을 원작자의 허락을 얻어 번역했다. 우선은 원본 내용부터

 

일본에서 꽤나 유명했던 이지메 사진. 블로그에 올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꽤나 망설였다. 사진 한장이 많은 것을 설명해 줄것이라 믿고 올린다.

모리구치 아키라 (교육평론가)

공식블로그: http://d.hatena.ne.jp/moriguchiakira/

 

얼마 전, 어떤 이지메(왕따) 관계 심포지움에 패널로 참가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가노현의 중학교 선생님이 실제 적용하고 있는 이지메(왕따) 대책, 굉장히 훌륭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 순서였습니다.

1.     이지메(왕따)에 대한 인지(認知)는 본인, 부모, 친구 등 누구에게서 온 보고라 하더라도 이 사태를 걱정하는 사람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고 통일한다.

※ 이지메(왕따) 가해자와 그 부모는 누가 그런 말을 했냐고 항의하거나 따지므로, 교원 측의 대응을 통일해 놓는 것이 굉장히 유효하다고 여겨집니다.

2.     반드시, 한 사람의 교원이 아니라 팀으로서 대응한다.

※ 팀 대응은 교원들이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부분이지만, 부디 극복해 주길 바랍니다.

3.     복수의 가해자(대다수의 경우)와 복수의 교원이 각기 다른 장소(방 또는 상담실)에서 1:1로 대응한다.

※ 여기에서 각 가해자의 발언에 모순이 생깁니다.

4.     상담 15분쯤 후에 상담 장소에 가해자를 대기시켜두고 각 상담 교원들이 집합하여 정보교환, 모순점을 분석한다.

5.     3번과 4번을 여러 번 반복하여 가해자에게 이지메(왕따) 사실을 인정시킨다.

3, 4, 5번은 당장 내일부터 실행할 수 있는 노하우가 아닐까요. “가해자의 자백이 필요한 직업에서 잘 사용하는 테크닉입니다.

6.     사실을 인정한 가해자에 대해 울 때까지 반성하게 다그친다.

※ 여기서부터 교사의 진가가 발휘되는 시점입니다. 중학생이나 되면 (특히 이지메(왕따) 가해자와 같은 학생들) 협박하는 정도로는 울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사 드라마의 국밥에 해당하는 요소가 필요합니다. 가해자가 열심히 생활하던 시절의 사진 등을 보여준다든지, 생활기록부를 보여 준다든지 하며 “…이랬던 네가,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같은 느낌으로 추궁한다고 합니다.

7.     이지메(왕따) 사실을 인정하고 울 때까지 반성한 가해자는, 일반적인 경우 피해자에게 사과/사죄하고 싶어집니다만, 바로 사과시켜서는 안됩니다.

※ 바로 사과하면 가해자가 속이 후련하다는 느낌을 갖기 때문입니다.

8.     적어도 1주일간의 시간을 두고, 가해자에게 사과를 허락합니다.

※ 가해자로부터 사과 받는 것은 피해자에게 있어서 정신적으로 치유 효과가 크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9.     보호자를 대동하여 이지메(왕따) 사실을 보고한다.

※ 이 때, 가해자/피해자를 실명으로 보고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심포지엄 중에 놓쳐서 못 들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례가, 축적되지도, 연구 대상이 되지도 못하고, 퍼져나가지 못하고 훌륭한 선생님의 한 실화"로 끝나버리는 것이, 교육계의 최대 맹점입니다.

그걸 어떻게든 해보고 싶다고, 통감한 하루였습니다.

 

신문이나 뉴스에 기사화 되고 있는 학교 내의 이지메(왕따) 사건은 빙산의 일각임이 분명하고, 또 그러한데도 그 해결 방법에 대해서 수십 년 동안 진보는 고사하고 퇴보만 거듭되고 있는 듯 하다. 날로 피해의 정도도 그 후유증도 커져만 가는데 그 어떤 제대로 된 대책 하나 제대로 못 내놓는 우리나라 교육부와 높으신 양반들에겐 정말 증오를 금할 수 없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자신이 맡은 학생 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리 지키기에 연연하여 복지부동인 교육자들도, 자식 교육 똑바로 못 시켜서 가해자로 키워낸 부모도, 가해자도, 피해자에게도 현재보다는 나은, 대처 방법이라고 생각하여 번역했다. 주변에 교육계의 높은 분들 중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없으실 테니 바다에 돌멩이 하나 던져 넣는 것과 다를 바 없을지 모르겠지만, 학교에서의 이지메(왕따)와 폭력에 신음하는 학생이 없어지길 바랄 뿐이다.

<관련글> 학교폭력(이지메)의 대처 순서 http://ppayaji.tistory.com/242


Posted by 빠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