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이름에 대한 단상

Grace , Alex , Sebastian , 기타 등등.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들이다. 아니, 영어권의 외국인들에겐 아주 친숙한한국 사람들의 이름일 것이다. 내가 아내를 영국 유학시절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이름은 ‘Amy’였다. 왜 어이없이 영어이름을 쓰고 있는 지에 대해 연애 시작하기 전 엄청 말싸움을 했더랬다.

이미지출처: Flickr, Paurian 비영리사용 허가

난 영국 유학 시절, 다른 한국인들의 영어이름이 끔찍이도 듣기 싫었다. 한국 사람의 이름은 영어권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 발음하기 쉬운 이름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외국인들의 이름은 발음하기 쉬운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레이스 라든지 데이빗이라든지 맞는 발음 같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가장 친숙한 데이빗 조차도 억양과 강세에 따라 이상하게 들리기도 한다.

일본 유학 시절과 일본에서 살고 있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타나카 리, 나카무라 박 이라는 일본 이름을 가진 한국 사람은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영어권 사람들보다 일본 사람들이 훨씬 더 한국 사람의 이름을 발음하기 힘들어 하는데 그 누구도 일본식 이름을 만들어가면서까지 일본어를 배우지는 않는다. 중국어권은 어떠한지 모르겠다. 아마도 한문을 중국식으로 발음해서 이름을 부를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그렇다면 프랑스에서는? 독일에서는? 알파벳을 글자로 쓰고 있는 나라가 왠지 좀 있어 보여서 그런가?

우리나라 영어회화 학원에서 수준 미달의 영어강사들이 범람하기 시작했던 무렵부터 수업 시간용으로 어줍잖게 갖다 붙이기 시작했던 영어이름들이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외국에 어학연수 가면 영어 이름 써야 되는 것처럼 당연시 되는 지금 세태는웃기다 못해 슬프다.

자신의 이름 세 글자 중 가장 발음이 쉬운 한 글자를 이름으로 쓰는 경우는 별로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이를테면 김경준의 경우, ‘이라고 부른다든지, 백범석의 경우 이라고 한다든지. 그런데 아무 관련조차 없는 흔하디 흔한 영어권 이름을 자신의 이름이라 자랑스레 소개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경우인지 잘 모르겠다.

유럽 친구들이 자주 물어봤었다. 한국에서 영어이름은 middle name이냐고. 누구나 다 갖고 있는 것인지. 아니라고 대답하면 굉장히 의아해하며 물어왔다. 왜 예쁘고 특이한 한글 이름을 안 쓰고 흔하디 흔한 자기네 개똥이 소똥이같은 이름을 갑자기 쓰기 시작하는지.

니네 발음하기 힘들까 봐 그런데

라고 대답하니 별 웃기는 소리 다 듣는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 외국 사람들 반응이야 둘째 치고 스스로 생각했을 때 나는 정말 이상하고도 요상하다는 생각 밖에는 안 든다. 부모님, 조부모님이 지어주신 소중한 이름, 고마운 이름 대신 개똥이’ ‘소똥이라고 불리는 것이 그리도 좋은가?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의 이름만큼 잘 간직하고 있는 것이 또 있을까? 미쿡에서 태어나 미쿡인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그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서 유럽어권 이름을 붙이는 것이야 그렇다 해도 멀쩡한 이름을 두고 글로리아안소니니 하는 잠꼬대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오늘까지도 난 이해가 되질 않는다. 도대체 그대의 태생은 어디요?


추가:
오늘 만났던, 미국에서 유학하셨던 이래로 토니 심’ (본명은 모름) 이라는 이름을 갖고 사시는 그분께 이 짧은 단상을 바친다. 얼른 미쿡인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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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빠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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