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론'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3.02 뻔한 것을 의심하는 습관
  2. 2012.02.17 논쟁에서 이기는 반론의 방법 (2)



「증세가 필요하다」, 「변화무쌍한 시대다」, 「글로벌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등등.

우리는 이런 주장들을 너무나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는 일이 많다. 하지만 잠시 멈춰서 생각해 봤으면 한다. 이런 주장들은 정말 옳기만 한 주장들일까. 「상식을 의심해 보자」는 생각도 가끔은 해보고 듣기도 하지만, 「제대로 의심하는 방법」을 배웠던 기억은 없다. 상식을 의심해 보기 위해서는 일단 반론을 생각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증세가 필요하다」라는 주장이 있다. 제대로 된 이유가 제시되어 있는가? 우선은 제대로 된 이유가 있는지 없는지 의심해 보자. 재정적자가 심각하기 때문에, 사회보장비용 부담이 너무 커져서, 미국이 군비 증강을 점점 더 강요해 와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이유들 하나 하나가 전부 「증세를 하지 않으면 해결이 불가능」한 것들일까?

얼마 전, 논쟁에서 이기는 반론의 방법」이란 글을 쓴 적이 있다. 일단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서, 논쟁이 될 만한 주장이니 반론의 3번째 방법, “상관없는 이유대기가 아닐까 의심을 한번 해 보자.

이를 테면, 심각한 재정적자의 이유가 국채라면, 화폐가치 그 자체를 조작하는 것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증세 이외의 해결책이 있다면, 증세와 재정난과의 관계는 희미해 진다. 단지, 「화폐 공급을 늘리면 증세는 필요 없다」 같은 듣기에만 좋은 소리를 바로 믿어서는 안 되겠지만.

어쨌든 이와 같이, 어떠한 주장에 대해서든 「반론」을 하는 습관을 가져보자. 그렇게 함으로써 뭔가 방향이 잘못 되거나 헛소리같은 주장을 내세워서 비웃음 당하는 리스크는 줄어들고 사회문제나 경제,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에도 나름 쓸모가 있다. 최소한 「뻔한 반론」을 예측함으로써 제대로 된 의논 또한 진행이 된다. 타당한 반론을 듣고 깨달을 수도 있고, 또 냉정하게 받아 들이는 것 또한 가능해 진다. 「자기 반론이 모자랐다」고 반성할 수만 있다면, 논쟁에서 진다 해도 상대에게 감정적이 되어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인터넷의 발달로 인하여 정보의 소스가 다양해 지고 인터넷 이전의 세상처럼 정보의 통일이 불가능해졌다고 한다. 그런데정말일까? Twitter Facebook등의 대표적인 SNS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인터넷 사회 속에서 CLUSTERING 하고 있다. 이미 정해 놓은 페이지를 인터넷 브라우저에서 열고, 자주 방문하던 블로그들을 돌아보고, 익숙함 속에 안주하고 있다. 그런 환경에서 취득하는 정보는 오히려 현재가 과거보다 단조로운 쪽으로 편향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른바, 「진짜 같은 것」도 한 번쯤은 의심해 보자. 「뻥 아냐?」하고 자문해 보자. 이런 훈련들을 하지 않으면 시비를 가릴 수 없는 「상식」에 휘둘려 유연한 사고방식을 키울 수 없어진다. 상대의 반론을 받아들이는 여유도 당연히 생기지 않는다.

완벽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없다.

뭐든지 다 아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반드시 오답을 내놓는 순간이 올 수 밖에 없다. 바로 그, 오답을 내 놓은 순간에 다른 누군가에게 지적 받지 않으면, 반론을 듣지 못하면, 인간은 성장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Twitter에서 자신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했다고 블록 하는 사람이 더 성장할 수 있을까?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고 설명에 의해 상대를 납득시키고 상대의 설명에 의해 상대의 주장을 자신이 납득할 만한 상황을 겪으며 더 나은 결론을 얻어가며 성장할 수 있지만, 자신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거나 조언해주는 사람에거 언어폭력을 휘두르거나 블록 하거나 해 버린다면, 「유치원생 같은 독불장군」 또는 「육갑 진OO 선생」이 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이든, 누구의 이야기이든, 더 열심히 반론을 해 보자.

현실 세계의 문제는 만화 속의 「선 vs. 악」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에 대한 해답을 생각하고 듣고 반론하는 것은 무척이나 재미있는 것이다.

끝으로...

언어 폭력이 물리적 폭력에 비해 눈에 보이는 상처가 없다고 해서 덜 아프고 덜 상처 받는 것은 아니다. 언어 폭력에는 언어 폭력으로 대항할 수 밖에 없겠지만, 적어도 상대보다 먼저 언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논객이라 불리워서는 안될 것이다.

언젠가, 언어 폭력도 성 추행처럼 사회에서 취급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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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빠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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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에서 이기는 반론의 방법

최근 활발한 SNS의 사용 등으로 사회 전반에서 「말이 많아졌다」는 느낌이다. 원래는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졌다」 라든지, 「의사 소통이 활발하다」는 표현을 쓰고 싶었지만, 「소통」이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너무 일방적인 의견 전달이 대부분인 듯 해서 어쩔 수 없이 「말이 많아졌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지나온 우리나라의 근대사, 그리고 그에 기인하여 복잡해진 현재의 우리 사회인 만큼, 여러 가지 목소리가 극렬하게 부딪히고 있는데, SNS에서든, 언론 상에서의 어떤 논쟁이나 주장들을 보고 있으면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분명 똑똑한 사람들인데,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들은 명석함을 반영한 논리적 사고의 표현이 아니고 「감정만을 반영한 말」(=생떼) 뿐인 경우가 많은 듯 하다.

손 꼽히는 「말싸움의 신」, 진중권씨와 수많은 트위터러, 네티즌들의 온라인 설전을 볼 때마다,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우민으로 규정하고 가르치려 드는 진중권씨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엄청난 말싸움 실력에는 머리가 숙여진다. 상대를 약 올리고, 분노하게 만들고, 이성을 잃게 하여 실수하게끔 만들어 자신이 어느 새인가 정해 놓은 규칙,

l  내 말을 이해 못하는 너는 닭 대가리다

l  내가 제일 똑똑하다. 대중은 언제나 나보다 멍청하다

l  나는 괜찮지만 네가 비속어를 쓰면 지는 거다

l  나는 대답하기 싫으면 네 말을 무시해도 된다

l  내 말이 궤변이라도 눈치 못 채면 네 잘못이다


에 의해 항상 승리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싫으면서도 어찌 보면 감동 그 자체다.

그런데, 주먹이나 말이나 싸움의 도구이고, 상대에게 더 큰 상처를 줌으로써 이기고, 그렇게 보면 주먹으로 싸우나 말로 싸우나 이기기만 하면 되겠지만 지금은 21세기다. 사람마다 각자 잘하는 것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 잘하는 사람들이 법을 만들고 「주먹을 쓰는 것은 야만인과 범죄자」라고 규정지었으니 주먹만 잘 쓰는 사람에겐 억울하지만 그에 따를 수 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다.

진중권씨처럼 말과 글로 먹고 사는 프로페셔널 「입 파이터(말 싸움꾼?)」들은 프로 운동선수나 다름이 없다. 그들이 제일 잘 하는 것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우매한 대중」들은 끊임없이 그들에게 도전하고 깨지고 「멍청한 닭 대가리」라는 취급을 사서 받고 있다. 참 안타깝다.

맘 같아선.. 요가 화이아~에 요가 펀치를 날려주고 싶다.

나도 아주 평범하고 일반적인, 「우매한 대중」 속의 한 사람일 뿐이다. 절대 프로페셔널 「입 파이터」가 아니다. 그들에게 이길 자신이 없기에 내 전문분야에서나 열심히 살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똑똑하지만 방법을 몰라서」 괴로워하는, 우매한 대중에서 벗어나 프로페셔널 「입 파이터」에 가까운 경지가 되어 그들과 싸우고 싶어하는 분들을 위해서, 몇 가지 반론의 패턴을 알려주고 싶다. 경험 상, 일반 비즈니스에서도 얼마든지 활용이 가능하니 사용처는 알아서 결정하시기 바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제대로 된 논쟁, 토의에 약하다.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은 논쟁이 아니다. 우리가 오랜 동안 봐 온 것은 「주장」이었던 것이다. 반론하겠다면 내 뱉은 말들이 단순한 우롱 혹은 매도(심하게 욕하며 나무라다, 꾸짖다, 욕하다)인 경우가 적지 않다. 상대의 의견이나 말에 이성적으로 반론하기 위해서는 어떤 점을 주의하면 좋을까?

사실, 반론 패턴은 그리 많지 않다. 크게 잡아 5가지 정도 되는데 만약 그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십중팔구는 그냥 악담 내지는 헛소리일 가능성이 크다. 상대할 필요도 없고, 입에 담을 필요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기 전에 「자기반성」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아무리 자신과 반대되는 사람이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말에 뒤따를 「반론」 정도는 예측해야 하고, 또 정확한 반론이라면 진지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프로페셔널 「입 파이터」들은 듣지 않고 듣더라도 모른척하고 자신의 말만 한다는, 기가 막힌 행태를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 그들은 밥줄이 걸려 있으니 어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일 수 있겠는가 말이다.

방금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반론의 패턴은 크게 보아 5가지(개인적인 의견) 정도다.

1.     논거가 빈약하다!

2.     거짓이다!

3.     그것과는 상관이 없다!

4.     중요하지 않다!

5.     ~에 따라서 다르다!


똑똑한 분들은 이미 다 이해하셨겠지만 조금 더 예를 들어가면서 이상의 5가지 패턴을 알아보겠다. 어떤 좋은 예를 들 수 있을까 고민해 봤는데, 대한민국 모든 이들의 고민거리, iPhone4S와 갤럭시S, 어느 것이 더 나은 스마트 폰?」을 그 무대로 삼겠다.

 

1.     논거가 빈약하다!

 

만약 당신이 「iPhone4S 파」라고 하면,

갤럭시S는 스마트폰이 아니다!”

라고 외치면서 그걸로 만족하고 있지는 않을까?

「갤럭시S 파」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주장은 어디까지나 말도 안 되는 매도일 뿐이다. 왜냐하면

어째서 갤럭시S는 스마트폰이 아니다!”라 하는지, 이유에 대해서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주장에는 이유가 필요하다. “갤럭시S는 스마트폰이 아니다! 왜냐하면 갤럭시S 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동어 반복(tautology)일 뿐이다.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이유가 필요하다.

아무 이유나 대는 것이라면 유치원생이라도 가능하다. 특히 상대방에 의해서 약이 올랐다면, 어른들 조차도 아무 이유나 막 들이대며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초반에는 조목 조목 반박해 주고 나중에는 진중권씨의, 「나는 대답하기 싫으면 네 말을 무시해도 된다」 스킬을 써 주면 된다.

이유가 없는 의견은 들을 가치조차 없다. 그러나 현실은 다른 법. 누군가 만약 논거가 빈약한 주장을 한다면 반박을 해 주자.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대라!

 

2.     거짓이다!

 

주장에 대한 이유를 댔다고 해서, 그것이 꼭 바르다고는 할 수 없다. 유감스럽지만 이 세상은 거짓말과 착각으로 가득 차 있다. 훌륭한 이유가 있다고 해도, 그 이유 자체가 틀렸다면 그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갤럭시S는 스마트폰이 아니다! 왜냐하면 엘지가 만든 스마트폰이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2가지 의미에서 틀린 주장이다.

첫째, 「엘지의 스마트폰 ≠ 스마트폰」라는 논리 전개의 의미가 불명확하다. , 불호는 갈릴 수 있지만, 엘지는 여러 옵티머스 시리즈의 스마트 폰을 제조했고 그 제품들은 스마트폰으로서 많이 팔려 나갔으며 스마트폰이 아니라고 주장할 논거가 없다. 따라서, 이 주장은 거짓이 된다.

둘째, 갤럭시S는 엘지의 스마트폰이 아니다. 잘 알려진 대로, 삼성의 스마트폰이다. 그러므로 위의 주장은 철두철미한 거짓인 것이다.

보통 「반론」이라 하면, 이와 같은 「거짓을 폭로」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한다. 신문이나 TV, 블로그 기사 등,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문장에는 반드시 「주장」과 「이유」 양쪽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유」에는 진실성이 있는 것들 만이 선택된다. 이것을 거짓이라고 폭로할 수 있다면, 그 대상이 된 주장은 성립되지 않게 된다. 「거짓이다!」는 5가지 반론 패턴 중에서 가장 강력하며 효과적이다. 단지 「거짓이다」라는 것을 증명할 책임이 생기기 때문에, 그 강력한 효과만큼이나 쉽게 사용하기 어렵다.

거짓을 이야기하는 상대라면 크게 외쳐주자.

거짓말 마라!”

 

3.     그것과는 상관이 없다!

 

거짓이라는 소릴 듣는 것이 무섭다고 「상관없는 이유 대기」 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그리고 가능한 한 바르고 확인된 이유를 고른다. 하지만 「바르다」고 해도, 그것이 주장과 관계가 없다면 의미가 없다. 예를 들면,

“iPhone4S은 스마트폰이 아니다! 왜냐하면 정전식 터치스크린이기 때문이다!”

물론 iPhone4S는 정전식 터치스크린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iPhone4S가 스마트폰인지 아닌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런 「상관없는 이유 대기」는 의외로 많다. 「거짓이다!」만큼 강력한 반론은 아니지만, 사용빈도는 「무관계다! 이것과는 관계가 없다!」가 훨씬 많다. 예를 들어,

고리 원전은 안전하다. 왜냐하면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이 훨씬 위험하기 때문이다

와도 같은 주장을 자주 접하게 된다. 하지만 왜 교통사고를 원자력 발전소와 비교해야 할까? 딱 잘라 말하겠다. 의미가 없다. 이것은

번지 점프는 안전하다. 왜냐하면 스카이 다이빙이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어느 쪽이나 줄이 끊기면 죽는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해서 절대적인 안정성은 증명할 수 없다. 「고리 원전은 안전하다」라는 명제를 증명하고 싶다면, 「위험하지 않은 이유」를 열거해야지, 다른 「위험한 것들」과의 비교하는 의미가 없다.

「상관없는 이유 대기」는 굉장히 많다. 정치가나 법률가, 기업의 임원 등 나이 지긋한 분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상관없는 이유 대기」를 하는 실수를 범한다. 「거짓」에 대해서 충분히 입 조심을 할 줄 아는 분들조차도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에는 신경을 못쓰는 모양이다.

누군가의 주장을 읽거나 들었을 때, 우선 「논점과 상관이 있는 이유」인지를 먼저 검증하는 것이 좋다.

“iPhone4S는 스마트폰이 아니다! 왜냐하면 정전식 터치스크린이기 때문이다!”

처럼 「논점과 상관없는 이유」를 내세워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미국의 법정드라마에서 자주 보는 것처럼, 멋있게 외쳐주자.

논점과 전혀 연관 없다! (No Relevant!)”

 

4.     중요하지 않다!

 

바르고 논점과 제대로 관계된 이유가 있다고 해 보자. 하지만 그 이유의 중요도가 아주 낮을 경우, 주장의 신뢰도도 낮다. 예를 들면,

“iPhone4S은 스마트폰이 아니다! 왜냐하면 제품 박스의 iPhone4S 그림이 실물보다 훨씬 크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렇다. 제품 박스에는 이전의 iPhone 시리즈와는 다르게, 실제 iPhone4S의 크기가 아닌, 실물보다 더 크게 iPhone4S가 인쇄되어 있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유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것인가?

스마트폰의 좋고 나쁨은 「유저가 느끼는 사용 성능」 등으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 제품 박스라고 하는 것은 중요하다 보기 어렵다. 따라서, 제품 박스에 실물보다 더 크게 그림이 인쇄되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치명적인 결점이 될 수는 없다.

비슷한 사례가 많다. 예를 들어,

생활보호제도를 없애야 한다. 왜냐하면 부정수급자가 많기 때문이다

같은 주장들이다. 물론 부정수급자가 많다는 것은 문제이며, 관리를 잘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생활보호제도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 중,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따라서, 「생활보호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극단적임에도 불구하고 중요도는 굉장히 낮을 수 밖에 없다.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다면 더욱 중요도가 높은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유랍시고 중요하지도 않은 내용을 내세우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해주자.

그게 뭐 어쨌다고! 전혀 중요하지 않구만!”

 

5.     ~에 따라서 다르다!

 

iPhone4S의 제품 박스에는 실물보다 큰 사진이 인쇄되어 있는데다 너무 심플해서 갤럭시S의 럭셔리한 제품 박스에만 매력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제품 박스를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사람 개개인에 따라 다르다.

이러한 「~에 따라서」에 의해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이유」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실력을 키워서 프리랜서가 되세요. 그러면 행복해 집니다

실력을 키워서 프리랜서가 되어서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된다고 해서 「행복」을 느낄지 어떨지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다.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것보다, 자신의 침대에서 과자를 까먹으며 만화책을 보는 것을 행복해하는 사람도 있다. 인생의 목적이 사람에 따라 다른 이상은 「실력을 키워서 프리랜서가 되는 것」이 곧 「행복」이라고는 할 수는 없다.

아마도 눈치채셨겠지만, 논쟁과 주장에 있어서 「목적」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무엇인가를 「좋다」고 주장할 때, 그것은 어떤, 어떤 것에 대한, 어떻게 「좋다」는 것인가. 타당한 이유를 대기 이전에, 주장하는 「목적」을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잊어버리면 그 어떠한 「이유」라도 오래된 유행어 「그때 그때 달라요」, 이 한 마디로 반론을 들을 수 밖에 없게 된다.

“iPhone4S는 스마트폰이 아니다. 왜냐하면 배터리 사용 가능시간이 짧아서 외부에서 하루 종일 사용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에는 고개를 갸웃할 수 밖에 없다. 스마트폰의 조건을 「배터리 사용 가능 시간」으로 정해버리면, 이 주장의 옳고 그름이 변해 버린다. 「배터리 사용시간의 장단」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성능이나 크기, 무게, 유저 인터페이스 등은 상관없이 배터리 지속시간만 길면 최고의 스마트폰이라는 이야기다. 논의 목적을 우선적으로 정의하지 않으면 논의 그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 것이다.

상황과 조건, 시기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이유를 내세우며 주장하는 상대에게는 이렇게 말해주자.

그것은 때와 장소에 따라서 다르다!”

 

끝으로

 

논의든, 논란이든, 논쟁이든, 말싸움이든 간에 이런 것들은 항상 서로 다른 생각이나 다른 의견을 가진 두 사람 이상의 다수에 의해 벌어지는 일이다. 항상 시작은 「나는 옳고 당신은 틀리다」를 기본으로 시작되는 일인 것이다. 그러니 논쟁이 벌어지는 곳은 당연히 시끄럽다.

끝으로, 이 글을 읽는 분들께 꼭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1.     상대편 의견이나 주장도 들어줘라.
à 당신이 듣지 않고 자기 주장만 하면 상대도 똑같이 한다. 당신은 들어 주는데 상대가 전혀 듣지 않는다면 아예 논쟁을 중지하는 것이 낫다.

2.     상대편 의견이나 주장이더라도 옳은 소리면 인정해라.
à 논쟁을 통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자.

3.     상대편의 인격 자체를 무시하지 마라.
à 무식해도, 멍청하다 해도 나름의 생각과 의견은 있을 수 있다. 어쩌면 당신이 더 무식하고 멍청해서 못 알아 듣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쩌면, 어두운 골목길에서 흉기를 들고 당신을 기다릴 사람을 만들 수도 있다.

4.     상대편이 막 나와도 예의를 지키자.
à 상대가 유치원생처럼 굴어도 이쪽은 어른이다. 그냥 가볍게 넘어가 주자. 적어도, 「당신처럼 예의를 지킬 줄 모르는 분과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말은 굉장히 효과적이다. 상대를 또라이취급 하는 순간, 당신도 또라이가 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입 파이터」가 또라이 취급을 받는 가장 큰 이유도 이것이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언제나 시끄럽다. 각자의 생각들이 타인과 부딪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단지 조금 더 나은 방법으로 부딪혀서 더 나은 결과를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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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빠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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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23 19:32 Address Modify/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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