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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02 뻔한 것을 의심하는 습관



「증세가 필요하다」, 「변화무쌍한 시대다」, 「글로벌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등등.

우리는 이런 주장들을 너무나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는 일이 많다. 하지만 잠시 멈춰서 생각해 봤으면 한다. 이런 주장들은 정말 옳기만 한 주장들일까. 「상식을 의심해 보자」는 생각도 가끔은 해보고 듣기도 하지만, 「제대로 의심하는 방법」을 배웠던 기억은 없다. 상식을 의심해 보기 위해서는 일단 반론을 생각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증세가 필요하다」라는 주장이 있다. 제대로 된 이유가 제시되어 있는가? 우선은 제대로 된 이유가 있는지 없는지 의심해 보자. 재정적자가 심각하기 때문에, 사회보장비용 부담이 너무 커져서, 미국이 군비 증강을 점점 더 강요해 와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이유들 하나 하나가 전부 「증세를 하지 않으면 해결이 불가능」한 것들일까?

얼마 전, 논쟁에서 이기는 반론의 방법」이란 글을 쓴 적이 있다. 일단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서, 논쟁이 될 만한 주장이니 반론의 3번째 방법, “상관없는 이유대기가 아닐까 의심을 한번 해 보자.

이를 테면, 심각한 재정적자의 이유가 국채라면, 화폐가치 그 자체를 조작하는 것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증세 이외의 해결책이 있다면, 증세와 재정난과의 관계는 희미해 진다. 단지, 「화폐 공급을 늘리면 증세는 필요 없다」 같은 듣기에만 좋은 소리를 바로 믿어서는 안 되겠지만.

어쨌든 이와 같이, 어떠한 주장에 대해서든 「반론」을 하는 습관을 가져보자. 그렇게 함으로써 뭔가 방향이 잘못 되거나 헛소리같은 주장을 내세워서 비웃음 당하는 리스크는 줄어들고 사회문제나 경제,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에도 나름 쓸모가 있다. 최소한 「뻔한 반론」을 예측함으로써 제대로 된 의논 또한 진행이 된다. 타당한 반론을 듣고 깨달을 수도 있고, 또 냉정하게 받아 들이는 것 또한 가능해 진다. 「자기 반론이 모자랐다」고 반성할 수만 있다면, 논쟁에서 진다 해도 상대에게 감정적이 되어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인터넷의 발달로 인하여 정보의 소스가 다양해 지고 인터넷 이전의 세상처럼 정보의 통일이 불가능해졌다고 한다. 그런데정말일까? Twitter Facebook등의 대표적인 SNS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인터넷 사회 속에서 CLUSTERING 하고 있다. 이미 정해 놓은 페이지를 인터넷 브라우저에서 열고, 자주 방문하던 블로그들을 돌아보고, 익숙함 속에 안주하고 있다. 그런 환경에서 취득하는 정보는 오히려 현재가 과거보다 단조로운 쪽으로 편향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른바, 「진짜 같은 것」도 한 번쯤은 의심해 보자. 「뻥 아냐?」하고 자문해 보자. 이런 훈련들을 하지 않으면 시비를 가릴 수 없는 「상식」에 휘둘려 유연한 사고방식을 키울 수 없어진다. 상대의 반론을 받아들이는 여유도 당연히 생기지 않는다.

완벽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없다.

뭐든지 다 아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반드시 오답을 내놓는 순간이 올 수 밖에 없다. 바로 그, 오답을 내 놓은 순간에 다른 누군가에게 지적 받지 않으면, 반론을 듣지 못하면, 인간은 성장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Twitter에서 자신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했다고 블록 하는 사람이 더 성장할 수 있을까?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고 설명에 의해 상대를 납득시키고 상대의 설명에 의해 상대의 주장을 자신이 납득할 만한 상황을 겪으며 더 나은 결론을 얻어가며 성장할 수 있지만, 자신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거나 조언해주는 사람에거 언어폭력을 휘두르거나 블록 하거나 해 버린다면, 「유치원생 같은 독불장군」 또는 「육갑 진OO 선생」이 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이든, 누구의 이야기이든, 더 열심히 반론을 해 보자.

현실 세계의 문제는 만화 속의 「선 vs. 악」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에 대한 해답을 생각하고 듣고 반론하는 것은 무척이나 재미있는 것이다.

끝으로...

언어 폭력이 물리적 폭력에 비해 눈에 보이는 상처가 없다고 해서 덜 아프고 덜 상처 받는 것은 아니다. 언어 폭력에는 언어 폭력으로 대항할 수 밖에 없겠지만, 적어도 상대보다 먼저 언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논객이라 불리워서는 안될 것이다.

언젠가, 언어 폭력도 성 추행처럼 사회에서 취급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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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빠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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