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덕여왕을 보지 않게 된 이유
Distorted History 2009. 8. 21. 08:30 |
최근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가 재미있다는 이야기가 간간히 눈에 띄어 오랜만에 드라마를 볼까, 그리고 외국이다 보니 저작권 문제로 인해 VOD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쉽지 않아 내려 받아 봐야 하는가 고민 중이었다. 그러다 어제 간 한국 음식점에서 틀어주는 ‘선덕여왕’의 일부분을 밥 먹으러 갔다가 보게 되었는데 단 3~4초간 내 눈에 들어온 장면이 ‘보지 말자’라는 결정을 내리게 했다. 알지 못하는 배역의, 알지 못하는 젊은 남자 배우의 몇 마디 대사가 내 귀를 심하게 자극했기 때문이다.
“완존(전?) 멋있어요! 완존(전?) 멋있어요!”
21세기,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젊은 세대만이 쓰는 말과 억양.
사극의 재미를 위해서, 시청률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던 것일까.
'역사적 사실과 인물을 묘사하는 사극 만큼은 진지해야 한다' 이다.
통탄할 만 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역사에 관한 지식을 주로 드라마를 통해서 얻는다. 특히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일수록 그런 현상은 매우 심하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공중파 TV에서 방송되는, 역사적 사실과 인물을 묘사하는 사극이라면 철저한 고증과 검토를 통해 완성도를 높여 ‘역사’ 자체를 전달하고 교육하고 있다는 사명감 또한 중요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허구의 인물을 등장시키고, 재미를 위해 역사서와는 다른 성격으로 등장 시킨다면, 책으로 역사를 익히는 사람들과 드라마를 통해 역사를 익히는 사람들은 같은 나라 사람이라 해도, 다른 역사를 인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름 역사를 좋아해 책으로 이미 많이 접했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도, 최근의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TV를 통해 나오는 것들이 충돌을 일으킬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좋은 예가 있다. 내가 현재 일본에 있으니 일본의 예를 들어보겠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본의 ‘닌자 忍者’는 과연 어떤 모습인가. 등에 사선으로 칼을 차고, 수리검과 표창을 하나 가득 항상 휴대하고 다니고, 터뜨리면 연기가 자욱해 지는 화약도 필수품. 싸움에는 엄청 강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적국의 요인을 암살하는, 그런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런 ‘닌자’의 모습은 영화와 드라마에 의해 창작된 모습이다. 진짜 ‘닌자’는 ‘간첩’이며, 어지간해서는 무기를 휴대조차 않았다. 현대와 비교해 조명이 어두운 옛날, 음지에 숨어서 적의 비밀을 관찰해 보고하는 단순한 정보수집 전문의 ‘간첩’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미디어의 흥미위주 묘사에 의해 언젠가부터 ‘용사 or 스페셜 에이전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일본인들 조차 ‘닌자’=’용사’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이는 굳어져 버렸다.
세상에 100% 정확한 사극은 없을 것이다. 그 누구도, 사서 속에 나와 있는 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이긴 자 만이 기록되었던 오래 지난 과거 속의 역사서이기 때문에 과장도 심하고 억지도 들어있을 테고, 신화인지 전설인지 모를 내용도 들어있을 것이다. 그런 역사서를 바탕으로 구성되는 것이기에 사극 또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정사로 여겨지는 것에 어느 정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극이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시대물이기는 하지만 허구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 창작물이라면 무슨 묘사를 하든 그게 큰 문제가 될 리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역사책을 다시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좋은 예가 몇 년 전에 방송되었던 ‘다모’라고 생각한다. ‘일지매’의 경우는 지나친 왜색 복식과 액션으로 언급하고 싶지 않다.
나는 편협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 나이보다 더 늙은 감성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자신보다 더욱 더 구닥다리 스타일 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뻥도 자꾸 듣다 보면 사실처럼 들린다.
그것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