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좋은 곳으로 모시고
Who I am 2010. 8. 6. 10:27 |할머니를 좋은 곳으로 모시고
7월말, 휴가와 출장을 겸하여 한국에 갔습니다. 약 2주일 간의 일정이었지요. 한국에 도착해서 서울의 처갓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서산에 계신 아버지께 아내, 동생과 조카를 데리고 내려갔습니다. 오랜만에 아버지를 뵙자 아버지께서는 5년째 알츠하이머병으로 대전에서 입원 중이신 할머니를 뵈러 가자고 말씀하셨고 온 식구가 할머니를 뵈러 갔습니다.
첫 손주라서 그랬는지 세상 그 누구보다도 절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신 할머니셨습니다. 온 동네방네 손주들 자랑으로 침이 마르시던 할머니가 2년여 전부턴 말씀도 못하시고 당신의 5남매, 그리고 그 밑의 9명의 손자들도 알아보시지 못하고 계셨습니다.
비록 기억은 못하시지만, 분간도 못하시지만 결혼 전 아내를 데리고 인사 갔을 때 ‘곱다’ ‘우리 애가 뭐 해주던?’ ‘반지가 예쁘다’고 하시던 모습에 아내도 1년에 두어 차례 할머니를 뵐 때마다 눈물짓곤 했었습니다.
이번에 뵈러 가니 간호사가 잠드신 할머니를 깨웠습니다. 힘겹게 눈을 뜨신 할머니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몽롱했던 지난 2년간의 눈동자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허공을 응시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동생, 조카, 아내 그리고 저를 차례로 둘러보셨습니다. 말씀을 잃으시고 벌써 2년이 넘었지만 무언가를 말씀하시고 계셨습니다. 눈물 때문에 눈이 흐려져 눈으로 많은 대화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직은 괜찮으실 거란 간호사의 말에 짧은 면회를 마치고 서산으로 돌아와 몇 달 만에 온 가족이 모여 이제 갓 돌이 지난 조카의 재롱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할머니께서 위독하시다는 전화가 병원에서 왔습니다.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부랴부랴 차비를 갖추고 할머니께 향했습니다. 오랜만에 첫 손주가 인사를 드리고 온 다음날, 할머니께서는 영면에 들어가셨습니다.
장례식장에는 많은 친척이 오랜만에 모였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생전에는 추석/설날마다 모였던 많은 친척들이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할머니께서 병으로 고생하시기 시작한 이후로는 이렇게 전부 모일 일이 없었지요. 외국에서 유학 중인 사촌 동생들을 제외하고도 40명이 넘는 대가족이 한자리에 같은 옷을 입고 모였습니다.
저를 시작으로 하는 저희 세대도 대부분 가정을 꾸려 식구가 늘어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조카들의 재롱과 난리 속에서, 그리고 오랜만에 만나 무슨 할 말들이 그렇게 많으신 것인지 이모 할머니, 고모 할머니, 숙모들, 고모들, 그리고 사촌 여동생들까지 와글와글 했습니다.
다들 삶이 바빠 할머니를 자주 찾아 뵙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다만 신기한 것이,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 주에 대부분의 가족들이 할머니를 뵙고 왔다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들러 인사 드리고 왔다고. 그리고 그 마지막에 아버지와 제가 할머니를 뵙고 온 모양입니다. 친척 어르신들이 다들 이구동성으로 그러십니다. ‘할머니가 첫 손주 오길 기다리신 모양’이라고요. 신기했습니다. 외국에 사느라 자주 찾아 뵙지도 못한 첫 손주 얼굴을 보고 돌아가시려고 그러신 것 같다고요.
향년 88세, 5년여의 투병으로 고생하시다 할머니께서 좋은 곳으로 가셨습니다. 당신의 자손들 얼굴 하나하나를 거의 다 보시고 당신이 가장 사랑해 주셨던 손주가 외국에서 돌아와 드리는 인사도 받고 가셨습니다. 평생 금슬 좋으셨던 할아버지 곁에서 영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벌써 할머니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