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에서 나는 "대한국인"들을 봤다. 그리고 손이 떨리고 심장이 뛰는 내 모습에서

나도 "대한국인"의 한명이라고 느꼈다. 저 청와대에서 눈막고 귀막고 저들끼리 비싼 한우 처먹고 있는

국민의 대표가 되라고 뽑아준 인간들(절대 한명이 아니다!!)이 국민의 왕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하며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초조해 하고 발을 구른다.

우리의 정부가 쪽팔리고, 우리의 대통령이 쪽팔려서 친구라고는 해도 일본인 "쪽발이"친구들에게는

말도 못하겠다. 몇몇 일본인 친구들이 뉴스 등에서 보고 "한국인들은 열정적이네" 어쩌구 떠들어도

결국엔 남의 나라. 휴...

과잉진압, 과잉시위 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왜 수만명의 사람들이 경찰에 의한 진압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길거리에 나서는 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상식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보통사람인 우리로서는 이명박씨와 정부, 경찰, 그리고 한나라당과 뉴라이트, 조중동이

"멍청하거나", "무시하거나" 둘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7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한국 사람.

참으로 많은 것을 봐왔다.

아주 어린 시절, 집에 흑백TV가 있다는 것 만으로 옆집에서 김일 아저씨를 보러 이웃에 사는 친구가

집에 와서 TV를 같이 봤고, 검정색 두툼한 전화기로 전화를 받기위해 이웃집에 음식이라도 조금 싸들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가득 담아 들고 갔더랬다.

우리 가족의 첫 차 흰색의 "부리샤"를 사던 날, 첫 드라이브의 라디오 방송에서 박정희 대통령 서거 뉴스를

들었고 우리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더랬다.

어느날 소리소문없이 갑자기 전두환씨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고... 초딩1학년인 내게 그 당시는 삼촌이었던

작은 아버지가 "광주에서는...." 어쩌구 저쩌구 알아듣지 못할 소릴 했다.

어느 날 집의 TV가 컬러로 바뀌고 집집마다 냉장고와 전화기가 한대씩 생길 무렵, 초등학교의 가정환경

조사서에 피아노가 있고 비디오가 집에 있다는 애들을 보며 한없이 부러워 했더랬다.

야간 통행금지가 어느 날인가 없어지고...

86년의 아시안 게임, 88년의 올림픽. 중학교 때 LD플레이어가 있는 집을 부러워 했지만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거치면서 나라가 성장하고 사람들이 부유해 지는 것을 느끼면서 살았다.

고등학교 때는 컴퓨터가 있는 집을 부러워 했다. 내가 부러워 하고 우리집에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우리 집에 생겼다. 모두들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좋아지고 그랬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 시절, 잘난척 하던 나이에도 왜 대학생 형들이 길거리에서 뛰어다니고

시내에만 나가면 최루탄 냄새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었는지 잘 몰랐다.

조중동 좋아하시는 어른들이 더 많았던 시절에도 광화문과 종로, 명동은 땀에 절은 형,누나들과

넥타이에 와이셔츠 입은 어른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영문을 몰랐던 나는 왜 길막히게 지랄일까, 왜 숨못쉬게 최루탄이 이렇게 난리일까 하고

짜증만 냈더랬다.

어느날 노태우씨가 TV에 나와 무슨 선언인가 (6.29)하더니 모두들 입을 모아 나라가 좋아졌다고 했더랬다.

지금와서 돌아보면 도대체 뭐하는 대통령인지도 생각안나는 노태우씨가 어쩌면 좋은 대통령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문민정부가 어쩌구 저쩌구 시끄러울 무렵, 나는 대학에 진학했다. 부모님과의 치열한 싸움끝에

국내에서의 대학등록금 이상은 받지 못하고 알바해서 알아서 다니는 조건으로 일본으로 건너와

또래의 친구들 보다는 조용히(?) 대학을 다녔다. 방학때 한국에 와서 친구들을 만날때 마다

서총련이니 머니 하는 소릴 들으면 아무것도 몰라 어리벙벙 멍청한 표정만을 지어야 했다.

독재도 아니고 뭘 위해서 내 친구들이 데모를 하는지 몰랐으니까. 노동자의 권익이고 뭐고를

왜 대학생들이 떠드는 걸까.... 이게 유일한 내 생각이었다. 내가 보기에 내 친구들은 빨갱이였다.

그러던 중 IMF라는 것이 터졌다. 이게 도대체 뭐냐... 잘 나가던 내 조국이, 그리고 우리집이 휘청하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제길.. 뭐냐 이게 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집에 있는 금붙이 싸그리 긁어다가

나라에 맡겼다. TV를 보며, 현장에서 보며 내 조국, 내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 다 애국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19세기도 아니고, 20세기의 끝무렵에 자기 자신의 재산을 터는 이런 착하고 순진한 국민들이 지구상에

존재할 줄이야... 눈물이 날 수 밖에 없었다.

금모으기 운동을 끝으로 군대에 갔다. 친구들보다 몇년 씩이나 늦게 가 체력의 한계를 팍팍 느끼며

구르다가 제대를 하고 보니 친구들은 취업이 안된다며 대학원에 가 있더랬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 전의 해외연수 붐 중에 IMF가 터져 중간에 돌아와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영어 실력과

좁은 취업문에 치여 할 수 없이 시간끌기/굳히기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나도 그 중에 하나가 되어 일본어는 남들보다 월등하게 잘 할수 있었지만 영어가 너무나 안되어

자존심이 상하던 끝에 모아두었던 돈을 죄다 들고 비자가 잘 나온다는 영국으로 건너갔다.

영어를 열심히 파고 있을 무렵, 나의 고국에서는 2002월드컵이 열렸다.

어느 나라를 가나 "중국인? 일본인? 그럼 어디?" 라고 묻던 외국인들이 "혹시 한국인?"이라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정말 가슴 뿌듯하고 벅찬 감동과 경험이었다. TV로 밖에는 볼 수 없었지만

그때도 광화문과 명동, 종로에는 나라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더랬다.

광화문을 메운 붉은 물결... 고국에 대한 향수에 가득 차 있던 유학생에게는 눈물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그런 광경이었다.

2002년 말, 잘 알지도 못하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고 뭘 하고 있는 지도 모르는체

내 평생의 7번째 대통령(최규하씨 포함) 은 소문으로만, 놈현땜에 되는 일이 없다는 소리만 들었다.

게다가 탄핵을 국민투표로... 그런 전대미문의 사건도 이야기로만 전해들으면서 우리나라가 참 시끄럽구나...

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다 한국에 돌아갔고 오래 지나지 않아 일본으로 건너와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국 사람이고 서른이 한참 넘었지만 여전히 대통령 투표라는 것을 한번도 해보지 못한 국민으로서

지내다가 내 평생의 8번째 대통령에 이명박씨가 뽑혔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번에도 외국에서 부외자로서,

하지만 한명의 국민으로서 염려아닌 염려와 기대아닌 기대를 했더랬다.

다른 건 몰라도 경제는 살리겠지.... 라는 이제는 늙어버리신 부모님의 의견만 전화를 통해서 들었더랬다.


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나 읽어본 국내의 뉴스와 사진, 영상들은 나를 눈물짓게 만들었다.

편리한 도구가 된 인터넷에 새삼 고마워하면서도... 이번에도 광화문을 가득 메운 사람과 촛불에

몸이 멀리 있다는 핑계로 마음 밖에는 참가를 못하는 그런 내 모습에 처음으로 분개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나는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화가 나서 참 길게도 썼다. 두서도 없고. 대한민국 만세, 대한국인 만세.

이명박씨, 그리고 주위에서 이명박씨한테 굽신거리기만 하는 인간들(옛날 이승만 대통령의 이기붕 같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그리고 너희 개새들 뉴라이트!

국민들의 소리를 들으란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는 대한국인들의

말을 들으란 말이다! 돈이 아무리 들어와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나라로 만들고 싶은거냐?

우리의 대한민국을 말이다. 제발 눈물이 나오지 않게 해달란 말이다!


촛불 시위에서 다치신 분들 빨리 쾌차하시길 바란다. 정말 감사하고...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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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빠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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