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국민이 본 재외국민투표
Who I am 2009. 2. 6. 14:39 |결코 자랑스럽지 않은 이야기지만, 한국나이 36세가 되도록 단 한번 밖에 투표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나마 한번은 군대에서 국회의원 후보들의 팜플렛을 보고 전단지 홈쇼핑을 하는 것처럼 해 본 것이 전부다. 19세에 한국을 떠나 오래 시간 외국을 떠돌며 살았기 때문이다.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준다는 뉴스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과연 그것이 옳은 결정인 것인지, 그릇된 결정인 것인지. 그리고 득과 실은 무엇일지. 일단 뉴스에 나온 재외국민 투표 절차를 살펴봤다.
1. 선거 약 150일 전 선거인 등록신청 (아마도 공관에 하게 되겠지요)
2. 선거인 명부 확정 (신청기록에 토대, 국내 구시군 의장이 하겠죠)
3. 선거일 약 14일 전에 재외국민 수 500인 이상 공관에만 재외 투표소 설치.
4. 투표기간은 약 9일~2주일, 투표시간은 am10:00~pm5:00
5. 재외공관에서 투표, 우편 투표/인터넷 투표는 도입 안함.
6. 외교 행낭 이용 국내 선관위로 배송.
절차만 훑어봐도 생겨날 문제점들이 우려되기 시작했다.
첫째, 선거인 등록신청.
외국에서 살고 있는 보통 한국인이라면 한국공관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공관의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교포사회에서 힘이 있는 사람이거나 공관과 관련해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평소 문제가 생겨도 교포를 위해서는 꿈쩍조차 하지 않는 대사관이나 영사관의 위치를 일반 재외국민이 알 수가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는 재외국민 중에서도 특정계층만 선거에 참가하게 할 우려를 낳는다.
둘째, 재외국민 수 500인 이상 지역의 공관에만 투표소 설치.
개인적으로, 모든 재외공관에 투표소를 설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국민을 투표에 참가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다. 그리고 인터넷 투표 문제도 꼭 고려해야 한다. 넓고 넓어 비행기를 타고 투표하러 가야 할지 모르는 미국은 차치하더라도, 내가 있는 일본만해도 지방에서 도쿄에 투표를 위해 온다고 하면, 시간과 거리의 문제 때문에라도 고속철도인 신칸센을 이용해야 하는데, 적게 잡아도 왕복 차비만 기본 2만엔 (약 30만원)이 넘게 나온다. 투표하러 가는데 기본 30만원과 반나절의 시간을 쓰라고 하면 흔쾌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기왕 선거권을 준다면 꼭 고려해 봐야 할 문제다.
셋째, 외교 행낭을 이용한 배송
어떤 방법에나 “부정 투표”의 가능성이 따르지만 이 외교 행낭을 이용한 배송도 큰 문제다. 정부가 믿음직스러우면 큰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범 정부차원의 투표조작 가능성도 커진다는 이야기다. 투명하게 진행만 된다면 크게 무리는 없어 보이지만 반대로 투명하지 못할 경우엔 큰 문제가 되는 방법이 아닐 수 없다. 특히나 현 정부하에서 말이다.
넷째, 의무는 없고 투표만 하는 재외국민
김철 기자가 운영하는 블로그의 포스트, “재외국민 투표권, 납세없이 대표없다”를 보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경우만 해도 일본에서 벌어서 살다 보니 현 시점에서는 일본에만 세금을 내지, 한국에 세금을 내지는 않는다. 병역의 의무는 다 했지만, 영주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고, 우리가 알만한 사람들의 자식들이 병역의 의무를 다 하지 않은 채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고생할 것 다 해가며, 세금 낼 것 다 내가며 한국에서 살고 있는 유권자들이 못마땅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모든 재외국민이라기 보다는 영주권이 없는 “장/단기 체류자”에게만 우선적으로 선거권을 인정하고, 영주권을 가진 재외국민들은 차제에 고려함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섯째, 교포사회의 분열 및 신 이익집단의 발생
한국에서 제일 지저분하고 치사한 정치에 관련하게 되면서 예전 글 “한국인만 조심하면 된다” 에서 이야기 한 것보다 더 악화된 교포사회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240만표,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대통령의 당락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나 교포가 집중되어 있는 미국과 일본의 경우, 일반적으로 우익보수의 경향을 띄며, 특히나 공관까지 투표하러 갈 수 있는 한가함과 재력(교통비가 엄청나게 비싸다)을 가진 이른바 “어르신”세대의 경우에는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로부터의 정보가 아닌, 자신의 “기억과 추억” 만으로 투표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을 교포 단체나 사회에서 보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교포사회”, “교포단체”라는 말은 많이 듣지만, 외국에 나와서 살면서 그런 곳에 가보거나 참가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극소수라 할 수 있다. 가봐야 큰 도움도 되지 않지만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똥묻은 코딱지 같은 감투자리를 놓고 점잖아 보이는 어르신들이 언제나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대한민국 국회의 축소판 같은 그곳에 각 정당의 입김이 불어 닥치고, 또 표를 몰아준다며 감투자리에 앉으신 양반들이 콩가루 정당의 관계자들과 사바사바 할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거기에 덧붙여 극렬 종교쟁이들이 합세할 경우에는 나라망신은 극에 달하지 않을까 예상이 된다. 현재의 떡고물도 눈을 뒤집고 달려드는 판인데, 한국의 정당들이 끼어 들면… 기름이 유출된 직후의 서해안 갯벌보다 더 난장판이 될 것은 자명하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교포가 많은 미국과 내가 지금 있는 일본이 새로운 이익집단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들고 싶다. 친미성향 일변도의 후보, 친일성향 일변도의 후보가 대통령/국회의원이 되도록 몰표를 줄 수도 있고, 또 그런 사람이 당선되었을 경우의 폐해는 우리가 현재 겪고 있기 때문에 길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다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섯째, 우리 재외교포들은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가.
선거에서 누군가를 뽑으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후보에 대한 정보, 그리고 공약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지금 단계에서 나와 같은 재외교포들에게 어떤 식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과연 정치권에서 제대로 검토는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군대에서 투표를 했던 기억을 되살려보면, 어느날 갑자기 반가운 편지 대신 기름 낀 징그러운 얼굴로 웃고 있는 아저씨들의 사진 5~6장이 서류봉토에 넣어져 우송되어 온 것을 발견했고, 그 기름진 사진들 뒷장에는 대동소이한 선심성 공약들이 마치 서로 베낀듯이 적혀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무슨 관상쟁이도 아니고, 얼굴사진, 그것도 포토샵으로 멀끔하게 만져놓은 사진을 보고 애완동물 고르듯이 그냥 고르면 되는 것인가? 게다가 현재 딴나라당에서 추진 중인 여러가지 여론통제에 대한 법률들을 보면 앞으로는 인터넷에서 조차 제대로된 정보를 얻을 수 없을 가능성도 매우 높은 상황이다. 제 2의 조지 부시, 제 2의 2MB을 뽑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기 때문에 무섭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글이 길어졌지만, 내 생각을 짧게 정리해 보자면,
1. 제대로 준비가 안된 제도를 시행하느니, 안하는 것이 낫다.
2. 재외국민 투표제도를 이용해 자리보전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3. 현재의 경제위기에 더 신경 써라. 정치적인 술수나 꼼수만 생각하지 말고.
4. 한국 내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국민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해라. 재외국민은 투표에 끼워주시면 감사하지만 내발로 왔기 때문에 큰소리 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