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깅 슬럼프와 금연
Who I am 2009. 6. 29. 08:10 |
블로깅 슬럼프와 금연
부끄럽다면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전국민 금연시대에 나는 아직 흡연자이다. 한달 전에야 금연을 시작했으니 아직 당당하게 비흡연자라 말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끊기 전) 예전보다 많이 줄이긴 했지만 여전히 하루에 반 갑 정도를 피워댔다. 처음 담배를 피우던 시절과는 이제 많이 변해 흡연이 가능한 곳도 많이 줄어들고, 흡연자의 천국이라 불리던 도쿄도 이제는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기가 꽤 힘들어졌다. 일본에 처음 왔을 땐, 맥도날드 안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감동을 받기도 했었다.
예전에 쓴 글 중에 [나의 흡연기]라는 포스트가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담배를 끊을 생각이 전무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담배를 끊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는지 글의 말미에 다시 담배에 대한 글을 쓸 때는 [금연]에 관해 쓰게 되지 않을까 언급한 적이 있었다.
흡연자 누구나 그렇겠지만, 거의 15년 가량 담배를 피워오면서 유학생 시절 생활고 때문에 한 2년 담배를 끊어보고, 다시 피우다 여자친구가 담배냄새를 싫어해서 한 1년 안 피우다가 다시 피고, 군대에 가서 5개월 가량 다시 금연, 그리고 나서 지금까지 줄곧 피워대고 있다. 여러 차례 담배를 끊어본 경험으로 내게 있어서 “금연”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라고만 느껴졌었다. 바로 지난 달까지만 해도.
이젠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내게 있어서 담배란 일종의 “약”이나 마찬가지였다. 특별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없는 나에게는 담배한대 피워 물고 한대 다 태우고 나면 담배를 피우기 이전의 나쁜 기분은 거의 기억이 나질 않는다. 폭음을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특히나 기분이 나쁜 상태에서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으며 가무를 즐기지 않는다기 보다는 싫어하는 쪽에 속한다. 노래방에 가는 것 조차 웬만하면 사절이다. 친척하나 없는 나라에 와서 사니 누굴 붙잡고 하소연을 할 수도 없다. 이런 지경이다 보니 오랜 유학생활과 외국생활에 뾰족한 수가 없는 내게 있어서 담배는 “정신 건강을 위한 알약”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갑작스러운 금연을 시작한 계기는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이다.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고 처음 뉴스를 듣고는 떨리는 손으로 제일 먼저 찾은 것이 담배였다. 하지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자는 생각이 들어서 나를 속박, 지배하고 있는 것을 떼어내 보고 싶어져서 결정한 것이다.
금연 후, 어찌하면 좋을 지 모를 것이 생겼는데, 바로 “스트레스”다.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나는 별다른 스트레스 해소법을 알지 못한다. 남들 다 쓰는 방법이라고 나도 써봤지만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중시킬 뿐이었다. 쓸데없는 고집일지도 모르지만, 술은 반드시 기분 좋게 마셔야 하며, 절대 취할 정도로 마시지도 않고, 술 먹고 노래방 가자는 친구가 제일 밉다. 끌려가도 노래를 골라야 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주고, 사람 많고 시끄러운 장소를 싫어하기 때문에 춤을 추러 갈 수도 없다. 그러니 무엇으로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어야 할 것인가가 내게는 굉장히 심각한 두통거리이자 또 하나의 스트레스 인 것이다.
담배가 피고 싶다. 글을 읽고 계신 분은 눈치 채셨겠지만 최근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을만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담배를 대신 해 줄 그 무엇도 갖고 있지 않다.
갑작스레 이렇게 쓰기 시작해서 쓰다 보니 이 블로깅 자체가 내게 있어서 “새로운 담배”가 되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담배 대신 글을? 좋은 생각 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하루에 몇 개씩 내 블로그에 새 글이 올라온다면 그날은 내가 스트레스 받은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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