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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흡연기

Who I am 2009.02.19 16:17 |




제목을 써놓고 보니 웃기는 제목이 되어버렸다. 요즘 같은 세상에 대놓고 흡연자라는 사실을 공표하다니. 왠지 [흡연자=비지성인] 처럼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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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피워본 담배는 [88]이었다. 요새도 나오는지 잘 모르겠지만, 중학교 때 아버지의 [88멘솔] 담뱃갑에서 사촌 형과 둘이서 하나를 꺼내 몰래 피워본 것이 처음이었다. 죽도록 기침만 나오고 눈물을 흘렸던 것이 담배와의 첫 추억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무렵, 수입담배 자율화가 이루어졌다. 생전 처음 보는 말보로, 마일드세븐이 가게에 놓여졌고 내 친구들은 [말빨(말보로 빨강케이스)]을 피우는 녀석들과 마일드세븐을 피우는 녀석들로 나뉘었고, 가끔씩 친구들의 담배를 한대씩 얻어 피우는 준 흡연자가 되었다. “정식 흡연자가 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용돈 탓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달 용돈이 5,000원이었고 그 중 버스비가 3,000원을 차지했으며 당시의 담배는 한 갑에 600원이었으니 용돈으로 담배를 사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고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하게 된 나는 정식으로 흡연자가 되었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서 쓰게 되면서 담배를 살 여유가 생겨버린 것이다. 대학 1학년과 2학년 때는 [학교-알바-]이라는 테두리에서 거의 벗어난 적이 없는 나는 자연스레 담배와 슈퍼 패미콤(닌텐도)을 가장 친한 친구로 갖게 되었다. 당시(1994~1997)의 일본 담뱃값은 230~280엔이었고 한국은 1,200~1,500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면세점에서 일본으로 사왔던 담배는 [This]. 외국인 친구들이 담배 이름을 보고서 놀렸던 기억도 있다. “Is This [This]?”, “What is [This]?” 등등. 담배이름 짓는 센스 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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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자의 천국이라 불렸던 일본에서 보낸 처음의 몇 개월 동안은 나의 흡연생활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짧고 굵어서 신기했던 [HOPE]로 시작, 그 독함에 얼마 견디지 못하고 이것저것 시험 삼아 계속 다른 담배를 피워봤다. [Peace], [Black Stone], [Lucky Strike], [] [Dunhill International], [Dunhill Lights], [Seven Star], [Camel], [Philip Morris], [Cabin], [Lark], [Kool], [Salem], [Parliament], [Kent], [Winston], [Hi-Lite], [Caster], [JPS]를 전전하다 결국 [Dunhill Lights]에 정착, 2년 정도 피웠다. 부드러운 맛이 맘에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8각형 디자인의 담배 케이스가 한마디로 뽀대가 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학 2학년 말 즈음의 여친이 담배냄새를 죽도록 싫어해서 타의에 의해 약 1년간 담배를 끊게 된 적이 있었다. 바꾸어 말하자면 젊은 날의 사랑의 위대함이랄까. 지금 써놓고 보니 코웃음 밖에 나오지 않지만. 여하튼 이별과 함께 애인대신 다시 손에 잡은 것은 또다시 [Dunhill Lights] 였다.

 

IMF와 함께 귀국하게 된 나는 또래 친구들은 이미 다 제대해 버린 군대를 가게 되었고, 100% 강제로 담배를 끊게 되었다. 피고 싶어도 필 수도 없고,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아 체력적으로 달리는 몸으로 담배를 피울 수도 없었다. 훈련소 6, 후반기 교육 11주 동안 담배 없이 살았으니 120여일, 4개월이 넘도록 비흡연자로 지내게 되었다. 몸이 워낙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별 스트레스 없이 금연이 가능했다. 하지만 자대에 도착한 첫날 40여명의 고참들과 번갈아 이야기하며 40여대를 하루에 피우고 났더니 하루 만에 바로 원래의 흡연자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때 피운 담배는 그 유명한 [ This]. 동갑내기 친구들은 [ 88]이었지만 3년 가까이 늦게 간 덕분에 조금은 향상된 [ This]를 보급받게 된 것이었다.

 

제대 후에는 [Dunhill Lights]로 복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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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사람들이 죄다 같은 담배를 피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보다 나은 맛을 지닌 담배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취직하고 심기일전 하자는 뜻에서 처음으로 스스로의 의지로 금연을 하게 되었다. 약 반년 정도 금연기간은 지속 되었다.

 

새로 일하게 된 회사에서 예상치 못했던 외국어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 누구보다 일본어를 잘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사회는 “100점짜리 일본어 사용자보다 “50점짜리 영어 사용자를 더 우대하고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죽도록 싫어하고 공부하지 않았던 나는 커다란 장벽에 부딪히게 된 것이었다. 음주가무를 별로 즐기지 않고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라고는 담배한대 피우고 잊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나로서는 다시 담배라는 친구를 찾게 되었고, 친구와 심사숙고 한 끝에, 영어장벽을 해결하기 위해 20대의 끝자락이라는 많은 나이로 영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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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한 보따리 싸가지고 간 [Dunhill Lights]가 다 떨어져 갈 즈음, 나는 고민에 휩싸였다. 담배 한 갑에 4파운드~5파운드 (당시 약 7천원~1만원) 나 하는 나라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이만저만 사치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 해결책은 바로 [말아 피우는 담배]였다. 일반적인 담배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었던 [말아 피우는 담배]와 한동안 같이 지냈다. 그 중에서 내가 고른 것은 [Golden Virginia]. 그러나 일반적인 담배보다 훨씬 독하고 비바람 부는 날씨가 많은 영국에서 담배를 피울 때 마다 침 발라 말아서 피우는 담배는 너무나 비효율적이고 귀찮을 수 밖에 없었다. 랭귀지 스쿨을 벗어나 대학에 가게 됨과 동시에 말아 피우는 담배를 버리고 맛도 없고 영국에서 제일 싸구려 담배였던 [Richmond] [Benson & Hedges]를 피우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일 입맛에 맞았던 [Dunhill Lights]를 만들어낸 본고장인 영국에 가서 비싸서 [Dunhill Lights]를 못 피우는 웃지 못할 상황이었던 것이다.

 

영국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착한 가격의 담배를 만날 수 있는 한국에 돌아와서 피우기 시작한 담배는 국산 [Indigo] 였다. 니코틴 0.1mg, 타르 1mg 이라는 부담 없는 가벼움. 예전의 [88]이나 [This]와는 다른 깔끔한 맛에 반해 다시 일본에 오기까지 몇 년 동안 사이 좋게 지냈다. 일본에 와서도 한동안 들어올 때 몇 보루나 사서 짊어지고 온 면세 [Indigo]를 피웠지만 결국엔 모두 연기로 사라지고 새로운 담배친구를 찾아야 할 시기가 왔던 것이다. 1mg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이후로 더 독한 담배는 입에 맞지 않아 한참을 고민하던 중 가격도 맛이 좋지는 않지만 저렴하고 깔끔한 [Mild Seven Super Lights]를 피우게 되었다. , 이래저래 부담스럽지 않고 맛도 나쁘지 않고적당한 타협안이었던 셈이다.

 

그러다 얼마 전 발매된 [Marlboro Filter Plus]가 대대적인 판촉활동을 하길래 피워보게 되었다. 맘에 드는 1mg이 없었던 관계로 담배를 살 때마다 고민에 휩싸였었는데 대대적인 판촉활동 덕분에 살 때마다 각기 다른 디자인의 라이터나 재떨이 증정품이 같이 따라와서 얼씨구나 하고 사게 되었다. 하지만 맛은 그냥 그렇다고나 할까? 그래서 여전히 고민 아닌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Samsung Techwin | Digimax i6 PMP, Samsung #11 PMP | Creative program (biased toward depth of field) | Pattern | 1/20sec | F/3.5 | 0.00 EV | 6.6mm | ISO-203 | Off Compulsory | 2009:02:18 20:32:21
 뭘 살까 망설일때, 이런 끼워주기 판촉상품은 선택을 좌우해 버린다.
사진 앞쪽은 왼쪽부터 가스라이터, 터보라이터, 가스라이터. 뒤쪽은 자동차 컵홀더용 재털이
 

이렇게 쓸데없는 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그저 감사 드릴뿐이다. 다음에 담배에 관한 글을 쓰게 되면 아마도 [금연]에 관한 글이 되지 않을까 싶다.

 
2008/07/28 - [Smoker's Manner] - 담배를 쥔 손은 어린이들의 얼굴 높이였다.
2008/07/28 - [Smoker's Manner] - 꽁초를 배수구에 버렸다...라기 보다는 숨겼다.
2008/07/29 - [Smoker's Manner] - 담배연기의 크기는, 몸 크기보다 절대로 크다.
2008/07/31 - [Smoker's Manner] - 700℃의 불을 들고, 나는 다른 사람들과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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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빠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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