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보게 된 일본의 어느 블로그에서 꽤 흥미진진한 내용을 알게 되어 소개해 보려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플란다스의 개”에 얽힌 이야기. 하지만 그 결말에는 결코 웃을 수 없는, 구제 불능의 뒷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플란다스의 개"는 1975년 일본에서 제작된 TV용 애니메이션일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울린 이 작품은 원작과의 아주 다른 모습이었는데... 아래는 일본의 익명 블로그, http://goo.gl/bMmpv 의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전재한 내용이다.
내 인생 최초의 비극적 서사시, "플란다스의 개". 보기만 해도 우울과 감동이 밀려든다.
“웃을 수 없는(구제불능의) 결말을 가진 이야기”라는 사이트를 읽다가 이런 기막힌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플란다스의 개”는, 일본인들에게 잘 알려진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 원작은 1872년 발표된 영국의 동화(원제: A Dog of Flanders)이지만, 원작자 여성(Marie Louise de la Ramee)이 벨기에의 풍속을 영국인의 관점에서 편견을 갖고 묘사하고 있다.
제국 열강들의 다툼이 격렬했던 19세기, 영국인들 마음 깊은 곳에는 유럽에 대한 적의가 숨어있었다.
“이 지방은 황폐하고, 사람들은 불친절하며, 게다가 사랑 받아야 할 개들을 몇 대에 걸쳐서 심한 노동과 착취를 강제로 시키고 있다”
위와 같은 묘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썼던 것이다. 벨기에를 위시한 유럽에서 이 책이 인기를 얻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책이 출판된 영국에서조차, 운명에 저항하지 못하고 교회에서 죽는다는 내용이 앵글로색슨으로 이루어진 영국 국민에게는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도 누구도 쳐다보지 조차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자동으로 눈물이... "잠들면 안돼! 흑흑"
그런데 일본에서는, 1975년에 감동적인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져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80년대부터 일본의 해외여행 붐을 타고, 벨기에의 플란돌 지방 관광이 유럽 여행의 상식, 기본 상품의 중의 하나가 되었을 정도였다.
원래는, 루벤스의 그림(‘네로’가 올려다 본 그림)을 볼 수는 있어도 “플란다스의 개”에 관한 것이 플란돌 지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동네 사람들조차 누구도 모르기 때문에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해당 지방으로 여행 갔던 일본인들이 실망하고 귀국하는 것이 당시 투어의 한 패턴이었던 것이다.
유럽의 "아니메 오타쿠"의 선구자가 된 얀.
1982년, 커다란 전기가 생겼다. 벨기에 앤트워프 관광국에서 일하고 있던 “얀 코르텔 Jan Corteel”라는 남성이 많은 것을 바꾸어 놓게 된 것이다. 일본인 관광객으로부터 “플란다스의 개”라는 이야기의 존재를 듣게 된 것이 발단이었다.
근면 성실한 성격으로, 재미조차 없는 조금 특이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던 그에게는 소문조차 돌지 않고, 애인도 없고, 친구도 적은 그런 사람이었다.
단지 고향을 사랑하고, 그로 인해 고향의 관광국에서 일하던 그였다. 그런 ‘오타쿠 청년’이었던 그는 고향에 관계된 소문을 그냥 흘려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상세한 내용을 물어 봐도,
“애니메이션이 있긴 한데, 어쩌면 원작이 있었을 지도…”
라고 할 뿐, “플란다스의 개”에 대해서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었다. 지금과는 달리 인터넷이 없던 시대. 일본어 정보는 그리 간단하게 입수할 수 없었다.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 지방을 무대로 하고 있다면, 도서관에 힌트가 있을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한 그는, 해당 지역의 향토역사 등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이런 저런 자료를 뒤지고… 그리고 결국, 그는 60년 동안 2, 3번 밖에는 대출된 적이 없었던 원작을 찾아낸 것이다.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그의 모습이 상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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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원작 책을 다 읽은 그는 크게 실망했다.
감동할 정도의 스토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원작에서는, 최후에 주인공 ‘네로’가 천사에게 구원받아 천국에 간다….는 장면이 없다. 그저 어두울 뿐인 작품인 것이다.
“플란다스의 개”의 원작자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후, 애견가로서 개의 보호에 힘을 쓰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상대조차 받지 못하게 되어, 만년에는 30마리의 개가 지켜보는 속에서 죽었다. 이런 원작자의 염세관(염세주의)가 반영된 작품일 뿐이었다. (도대체 이 원작과 일본인이 받은 감동과의 괴리는…)
일본인들로부터 애니메이션의 훌륭함에 대해서 많이 들었다. 어쩌면 그것이 힌트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그는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인 관광객을 친구로 만들어 귀국한 그들에게 애니메이션 비디오와 동화집을 주문해 받았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감동 받았다.
그는 지금의 유럽에 서식하는 “재패니메이션 오타쿠(Japanimation Geek)”의 선구자가 된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모습의 현지 동상. 눈물이 쏙 들어간다.
정열은 더욱 더 불타올랐다.
1년 반에 걸쳐서 조사를 하고, 원작의 무대가 가까운 ‘호보켄’ 마을이라는 것도 알아냈다. 원작에 그려진 운하가 ‘스켈트’강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결국엔 만화에 나온 풍차의 흔적도 발견하게 되었다.
조금 특이한 청년, “코르텔”의 행동은 주위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할 정도였다. 당시의 일본은 ‘극동의 섬나라, 독일 쪽에 붙었다가 전쟁에 지고, 그 후에 조금 경기가 좋아졌을 뿐인 나라’라는 이미지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열의는 점점 주위 사람들을 움직이게끔 만들었다.
루벤스 외에는 이렇다 할 관광자원이 없던 이 동네에, 또 하나의 관광 심볼이 생길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주위의 염원도 쌓여, 드디어는 1985년, ‘네로’와 ‘파트라슈’의 작은 동상이 ‘호보켄 (관광)정보 센터’ 앞에 세워졌다. 제막식에는 앤트워프 주지사, 시장, 재 벨기에 일본대사 등도 참석,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고 한다.
풍차는 관광용으로 다시 세워졌다. ‘네로’와 ‘파트라슈’가 함께 묻힌(그렇다고 되어있는) 거리의 교회는, 관광 코스가 되었다. 루벤스의 작품을 보기 위해 앤트워프를 방문하던 일본인 관광객이 ‘호보켄’마을에도 들리게 되었다.
이 지역은 관광수입이 풍족하게 되어 관광국에 근무하던 그의 명성도 함께 오르게 되었다. “플란다스의 개”는 벨기에에서 방송되었고, 80% 가까운 시청률이 나왔다고 한다. “얀 코르텔”은 “플란다스의 개” 연구가로서 알려지게 되었다. 그 지역에서는 일본 통으로 알려지고, 일본과의 다리 역할로서도 활약하게 되었다.
연구를 위해서 일본에 수십 번이나 방문하게 되었고, 친일파가 된 그는, 일본에서 알게 된 일본인 여성 “이시이 요시미”와 결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일본인 아내와 함께, 지금도 고향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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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어야 할 터였다.
2008년, 그가 아내 살해 혐의로 체포될 때까지는.
왜 일까?
“코르텔”이 일본인 아내와 결혼하고, 일본과 벨기에 사이의 다리로서 활약하고 있었을 당시까지는 여러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도 상세한 설명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저지른 살인에 대해서는 속보를 아무리 조사해 봐도, 일본어 사이트에서는 그 어떤 이유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영어 사이트를 찾아봐도, 미국인이나 영국인은 “플란다스의 개”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구글의 힘을 빌려 네덜란드어 사이트를 일본어로 번역하기도 하고 영어로 번역하기도 하면서 조사해 봤다. 그 결과, 깜짝 놀랄 만한 일을 알게 되었다.
“코르텔”이 아내를 죽인 이유는, 아내의 불륜이었다.
“코르텔”과 “요시미”가 결혼하고 수년 동안은 정말 행복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점점 “요시미”는 남편의 구속이 참기 어려워졌던 모양이다. 그녀가 퇴근할 때에는 직장까지 마중을 온다.
자유를 갖고 싶다, 자유롭게 이곳 저곳에 가고 싶다, 는 것이 “요시미”의 욕구였던 듯 한데, “코르텔”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외국에 와서 해외에서 밖에는 맛 볼 수 없는 자유를 만끽한 일본인 여성. 그녀를 소중히 여기다 못해 그녀의 모든 것을 관리하려고 드는 벨기에인 남성. 점점 두 사람의 사이에는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 그녀의 앞에 나타난 것이 입이 무겁다는 소문의 남자, “피에르”였다.
“남편과는 오랫동안 대화가 없어요. 남편은 완고해서 말이죠”
비밀을 잘 지키는 남자, “피에르”에게는 마음이 편해졌는지, “요시미”는 그에게 푸념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특이한 사람이야. 인내해야지”
푸념을 듣는 동안, “요시미”가 “피에르”에게 친밀함을 느끼고, 끝내 이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게 되기까지는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피에르”의 입은 단단했지만(=무거웠지만) “요시미”의 아래 입은 헐거웠다
(일본식 표현, 원 글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직역했음).
그런데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관계는, “코르텔”에게 최악의 형태로 걸리고 만다.
두 사람이 목욕탕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는 장면을, “코르텔”이 목격해버린 것이었다. 입이 헐거웠던 것 뿐 만 아니라 겨드랑이도 헐거웠던 것(=방비가 허술하다, 원 글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직역했음)이었다.
하지만 이때, “요시미”는 표변했다. 일본 여성의 일반적인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이, 뜨거운 불륜의 현장을 방해한 “코르텔”에게 분노를 뿜어냈다고 한다.
“당신 말이야, 남자로서의 매력이 없다고!!”
그녀의 입은, 나빴다.
그 때, “코르텔”은, 자신이 그녀를 깊이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무슨 일이 있다고 해도 그녀의 마음을 돌려 놓으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이혼을 요구하는 “요시미”에게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고 매달렸다. 하지만 그와 헤어져서 “피에르”와 하나가 되고 싶다는 “요시미”의 기분은 변하지 않았다.
“코르텔”은 하나의 제안을 했다. 그것은 마지막 소원으로, 그녀와 함께 일본을 함께 여행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둘이 처음 만났던 일본에 가게 되면 그녀의 마음도 돌아올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à 남자들에게 있을 법한 착각(원 글 작자의 견해).
남자의 바람은 “다른 이름으로 저장”, 여자의 바람은 “덮어 씌워 저장”(원 글 작자의 견해)
다른 남자에게 마음이 옮겨 간 이상, 뒤돌아 볼 리가 없는 것이다.
일본에서 “요시미”는 부모에게 “코르텔”을 만나게 했다고 한다(이 부분은 여성 특유의 담대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원 글 작자의 견해).
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변하는 일은 끝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벨기에로 귀국 후,
“날 자유롭게 해줘”라고 요구하는 “요시미”.
그것을 거부하는 “코르텔”에게 “요시미”는 끝끝내 욕을 하고 만다.
그리고, 결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고 말았다.
그녀는 직장의 벨기에인 동료들과 그를 한 사람 한 사람씩 비교해서 얼마나 “코르텔”이 열등한 오타쿠인지, 사정없이 매도한 것이다.
… 여기까지 이르면, 어찌할 방도가 없다.
이때의 “코르텔”의 실망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 때의 충격은 그의 행동이 보여주고 있다.
“코르텔”은 흥분하여 이성을 잃고, “요시미”를 나이프로 22번이나 찌르고 베어 살해한 것이다.
현실은 “플란다스의 개” 이상으로, 구제불능의 웃을 수 없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참고: 이상의 이야기는 근거가 있는 사실로서, 벨기에에서는 2010년에 관련 재판이 있었다고 합니다. HLN België - Verdediging Jan Corteel pleit uitlokking door Japanse Ishii (1114409) http://bit.ly/zofedK
실제 재판 모습
<각주>